우리는 지금 저성장과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뉴노멀 시대에 직면해 있다. 특히 올해 여름과 같이 폭염과 집중호우가 연달아 닥치는 '기후채찍' 현상은 경험하지 못한 위기다. 반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성장으로 물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복합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관리 분야에 AI를 본격 도입해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기후테크 육성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물산업 기회를 창출하고 국가 신성장 동력도 확보해야 한다.
다목적 댐과 용수댐은 우리나라 물 공급과 홍수 재해 관리에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대부분 1950-80년대 건설되어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 상류에는 퇴적물이 쌓여 저장 용량이 2050년까지 평균 26%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상수도 시설도 노후화로 유수율 개선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AI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효과적 수단이다. 위성 영상, 드론 촬영, 수중 센서 등 다양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면 퇴적 진행 상황을 정밀 파악하고, 준설 시점과 방류 계획을 최적화할 수 있다. 구조물의 미세한 균열 등도 조기 감지해 보강 시점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수도 분야에서는 압력 센서와 유량 데이터 등을 분석해 누수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고 유수율을 높일 수 있다. 재해 관리 영역에서도 AI는 기상·수문 데이터를 분석해 홍수와 가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도록 돕는다. 나아가 기후테크와 결합하면 고난도의 기상 예측과 자원 최적화까지 가능하다.
AI의 활용은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나타난다. AI와 디지털을 융합한 첨단 물산업에 막대한 기술과 자본이 투입되며 연평균 8-9%에 달하는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에 세계 각국은 AI시대에 맞춘 산업구조 개편과 자국 물 기업 육성을 전략화하고 있다. 실제 세계 최대 물관리 기업인 수에즈(SUEZ)는 AI를 활용해 에너지 사용을 30% 절감하고 누수율을 15% 낮췄다. 프랑스의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는 디지털 솔루션으로 운영비를 25%, 운영·관리 비용을 20% 줄였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도 기후테크를 무기로 물관리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명실상부 AI가 글로벌 물 산업을 이끄는 핵심축이 된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환경부와 함께 AI 물관리 혁신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디지털 트윈이다. 이는 댐과 하천의 실시간 기상·수문 데이터를 연계·분석해 과학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수단이 된다. 수도 분야에선 AI 정수장을 선도하고 있다. 2022년 화성 정수장을 시작으로 공주를 포함한 전국 광역 정수장에 확대 적용하였다. 이를 통해 수질 변화를 예측하고, 에너지와 약품 사용을 자동으로 최적화하며, 설비 이상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언제 어디서나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국내 사례들은 앞으로 AI 물관리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단·중기적으로는 시설 운영의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예측·분석으로 물관리의 중심축이 움직일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자율적 의사결정까지 내리는 능동적 AI로의 발전이 전망된다. 이는 물관리 분야에서도 완전 자율운행 자동차나 가정용 로봇처럼 AI가 현장 업무를 주도할 것을 예고한다. 이 단계에서 물관리는 데이터·플랫폼 중심 산업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환경·건설 기업뿐만 아니라 IT와 스타트업까지 물관리의 주체로 참여하고, 경쟁과 협력을 촉진하여 산업 융합과 혁신을 가속화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AI 물관리 혁신을 선도할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풍부한 연구 경험과 고품질 데이터, 초격차 물관리 기술 개발 및 실증 역량이 그 핵심이다. 이러한 자산을 토대로 AI를 적극 도입하고 기후테크를 선도한다면 기후위기의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수자원 인프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나아가 디지털 트윈 같은 첨단 물관리 모델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면, 정부 국정과제인 AI 3대 강국 실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저성장과 기후위기라는 복합 도전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꾸는 길은 이미 열려 있다. 남은 것은 얼마나 빠르고 과감하게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병기 K-water연구원장
출처 : 대전일보(https://www.daejonilbo.com)